최근에 읽은 에세이들 중에 진솔하면서도 재밌게 읽은, 어쩌다 책을 7권이나 낸 작가님의 책을 이제야 만났지 싶었다.
"기분은 비효율적이었다. 슬픈 일에 일일이 슬퍼하고 기쁜 일에 꼬박꼬박 기뻐하다가는 오늘 안에 집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일을 하다보면 슬픈 일에도 기쁜 일에도 마음을 줄 시간이 없다. 쇼 머스트 고온, 공장처럼 처리해야할 일은 계속 쌓여가니까.
내 동료가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안..! 근데 이거 답장만 하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일을 쳐내다 보면 내 감정이나 나에게 가까운 직장 동료의 감정을 받아주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다.
"주차장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르바이트 생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담배를 배웠다면 좋았을 텐데. 한번도 피워 본 적 없는 담배의 맛이 궁금해질 만큼 바짝바짝 속이 탔다."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 전체가 답답해져가고 커피로도 달달한 간식으로도 마음을 달랠 수 가 없는 날이면 우루루 담배를 피러 나가는 남자들을 보며 나도 생각했다. 담배를 피워본 적도 없지만 왠지 담배만이 이 답답한 기분이 뻥 뚫리게 할 것 거 같은 기분.
"근데 살아보니까. 단돈 오십만원, 백만원이라도 내 돈이 최고야. 내가 그걸 너무 늦게 알았어."
어렸을 때부터 여자도 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박히게 듣고 살아왔다. 취집이라는 단어를 벌레처럼 경멸해오던 사람이고, 남편돈을 타쓸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돈을 자신을 위해서 단 만원이라도 쓸 때 보일 눈치가 짐작이 되었다.
"남몰래 언니의 행복을 빌어 본다. 어디에 있든 지금 이 순간 역시 언젠가 언니의 자랑이 되기를.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날보다 현재에 머무르고 싶은 날들이 더 많이 만나기를. 내게 미운 정을 가르쳐준 언니가 너무 미움받지 않기를."
앞으로 더 행복한 날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작가님의 마음이 너무 예쁘다.
"읽고 쓰고 생각할 여유가 있는 삶을. 요즘엔 하루에 두번씩 일기를 쓴다. 침대 옆에 놓이는 책들이 자주 바뀐다."
왠지 모르게 집안에서는 유투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소모적인 행위밖에 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할때는 집앞에 있는 파리바게트를 자주 찾곤 했다. 구석진 통창 앞에 앉아 일기를 쓰곤 했는데, 일기를 자주 쓸때도 겨우 일주일에 한번 이었다. 그때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겨우 일주일에 한번 내 마음에 눈길을 줄 수 있었다. 나로서 존재했던 시간이 일주일에 단 한번,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을 살아온 것일까.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어째서 할머니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을까. 알량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려고? 그래,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는 언니들을 상상하지 못할 미래를 나는 할머니를 통해 보았던 것 같다. 결혼할 생각도, 아이를 낳을 계획도 없는 내가 띠동갑을 두번 넘는 언니들보다 그 모습에 더 가까운 것 같아서. 최악의 미래가 사고처럼 내게 닥친다면 누군가 딱 이만큼의 친절을 베풀어주기를 바란다."
딱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도, 그리고 그걸 알량한 도덕적 우월감이라고 느끼는 작가님의 마음도 나와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놀랍도록 솔직하게 내가 그 할머니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내 미래가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마음 한 구석의 불안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깨달음도 있다. 작가님이 느끼는 불안에 마음이 짠하면서도 사실 결혼도 안했고 자식도 낳을 지 모르는 내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후방은 늘 분주하다. 자기 몸무게보다 무거운 수레를 끄는 파트라슈 같은 얼굴로 끊임없이 뭔가를 나르거나 정리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려면 몇가지 용기가 필요했다. 무시 당할 용기, 짜증 섞인 대답을 들을 용기, 넌 뭔데 이 바쁜 와중에 눈치없이 말을 시키냐는 존재론적 질문이 담긴 눈빛을 마주할 용기."
파트라슈라는 표현도, 존재론적인 질문을 담긴 눈빛이라는 묘사도. 내가 보진 않았지만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서, 먹고 사는 그 치열함을 나도 느끼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너무 현실적이었다.
"일이란 건 언제나 나를 내게서 조금씩 멀어지게 하니까."
일이란 건 나를 내게서 멀어지게 만드는게 맞는 거 같다. 그러면 무려 8년을 사무직으로 풀타임으로, 열심히 일한다고 연장근무도 무시로 했으니 나는 나에게서 얼마나 멀어져있는 걸까. 내 자신이 서랖 뒤에 어디 넘어가 있어서 이제 찾지도 못하는 수준이 되지 않았을 까.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했다. 지금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직장인에게도 정답을 알 수 없는 고민이 잘 떨어지지 않는 스티커처럼 끈적하게 붙어있겠지."
원하던 회사의 사원증을 건 사람들을 보면서 한없이 쪼그라지다가도 사실 꿈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생기는 수많은 고민을 앉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일하며 내 영혼은 매일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내안의 무언가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 일과 사람에 대한 어떤 신뢰같은 것."
나는 영사관에 일하면서 인도인에게 영어로 un-educated person이라는 욕을 먹었다. 내가 못배워먹은 사람이라는 일차원적인 욕을 듣는 것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모범생으로 살아왔고 대학까지 나온 내가 왜 못배워 먹은 취급을 당하지?
나뿐이 아니었다. 나와 같이 근무하는 친절하고 밝았던 동료 두명도 점점 변해갔다. 천사 같았던 동료는 진상 민원인들한테 화를 내지 못해서 자주 시름시름 앓았고, 다른 한명은 점점 우리가 아는 사무적이고 딱딱한 공무원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나도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한 혐오가 늘어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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