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선이 두렵더라도 나는 내자신을 속이면 안된다. 내 마음속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내마음이 웅웅 울려되는 소리를 잘 들어야한다. 내 마음이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왜 아프다고 소리치는데 들어주질 않냐고 방치된 아이처럼 마음이 썩어들어 간다.
새비 아저씨처럼 해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너를 아껴주고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아야하고 대의 명분을 외치면서도 정작 아내가 어디 불편하지는 않는지. 남에게 말로 상처를 받을 때 외면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음악을 틀고 건강체조나 추는 사람을 만나면 철저하게 후회하게 된다. 그렇게 이기적이고 감정적으로 무심한 사람을 만나면 집은 쉬는 공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긴장이 되어 몸이 굳어진다.
배를 곯고 몸 하나 뉘일 공간이 없어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 귀하게 여기는 마음 하나만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고 그 사람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나도 넉넉치 않은 돈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컵떡볶이를 사주면서 환심을 사려고 했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나무 바닥을 왁스칠한 더러운 걸레로 닦으면서 미안하지도 않은 데 일진에게 미안하다고 비굴하게 사과했던 아이. 그런 아이가 아직 나에게 살아있나 보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들 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는 욕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깝고 끈끈해서 속까지 다 보여주고 서로에게 치대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했다.
밥은 같이 먹어야 맛이야.
할머니의 말에 별로 동의하지는 않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밥은 어떤 사람과 먹느냐에 따라서 맛이 다 다르니까. 혼자 넷플릭스를 보며 밥을 먹는 게 훨씬 더 편한 적이 많았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밥은 맛이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먹는 밥은 맛이 있었다.
할머니는 자기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엄마를 키울 때도 추리소설을 읽느라 가뜩이나 부족한 잠이 더 부족했었따고.
어린 시절에는 기갈이 든 사람처럼 책을 읽었다고 했다.
어쩌면 친구가 죽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새비 아주머니는 진땀을 흘리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그 동안 그녀에게 얼마나 의지했는지, 그녀와 주고 받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 지 이해했다. 살아나게 된다면, 새비 아주머니는 생각했다. 삼천이가 살아나게 된다면 하늘 아래 부끄러울 것 없는 사람을 살겠다고 하늘에 빌었다.
나는 너를 다그쳤기 때문에 더 나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 너에게 조금이라도 관용을 베풀었다면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었을 거야. 아빠도 말했잖아. 넌 큰사람이 될 수 없을 거라고. 남편도 얘기했지. 네가 이룬 모든 것은 운일 뿐이라고. 남편도 얘기했지. 네가 이룬 모든 것은 운일뿐이라고. 그러니 넌 더 단련되어야 해. 이런 취급에는 이미 익숙 해졌잖아.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 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집으로 가자 아빠가 반찬을 꺼내놓고 밥을 먹고 있었다. 아빠는 우리를 보고는 괜찮으냐고 묻더니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명희 아줌마의 말이 맞았다. 엄마는 분명 아줌마와 아빠 사이에서 당황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침대에 눕힌 뒤, 밥을 먹고 가라는 아빠의 제안을 거절하고 희령으로 내려갔다. 일요일 오후였고 내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냇가에서 물을 보고 있었어. 화창한 날이었고 햇빛이 수면위로 떨어져서 반짝였지.
새비는 사람들이 우스운 이야기 좋아하는 마을로도 소문이 나서 어딜 가느 우스운 이야기 하며 웃는다.
나는 언제나 잘 웃는 아이였고, 자라서는 잘 웃는 어른이 됐다. 마음속으로 울고 있을 때도 얼굴에선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와 맞서 싸웠다면 엄마는 결국 자신이 나와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정신관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차라리 포기하지 그랬어. 그 그늘에서 사느니 그냥 포기하지 그랬어. 병원이 필요한 사람은 엄마였어. 약에라도 의지해야 할 사람은 엄마였다고.
희자의 삶이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처럼 할머니 또한 자신의 삶이 정체되어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희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할머니는 같은 고향 출신의 남자와 결혼했다.
같이 밥 먹을때 보라. 생선이든 고기든 가장 큰 살코기를 제일 먼저 집어가는 기를. 영옥이 너가 귀하면 기렇게 하갔어? 말은 재미나게 하디. 기건 나두 알갔어. 기런데 영옥이 네말 들어주는 모습을 내레 본 적이 없다.
남자들이 다 기렇디 않아.
영옥아. 내는 다른 거는 몰라두 너레 너를 속이디 않았으면 한다.
새비 아재비를 기억해보라우.
증조모의 그 말이 할머니의 마음을 내리쳤다. 새비 아저씨의 긴 목, 미소 짓던 모습, 새비 아주머니를 바라보던 따뜻한 눈빛과 말투, 영옥아. 영옥아. 부르던 부드러운 목소리. 아재비는 해같은 사람이라요. 낭중에두 해를 보믄 아재비가 생각날 것 같아요. 영옥이는 ㄴㅇ중에 시인을 해야갔어. 영옥이는 씩씩하고 밥도 잘 먹고, 크게 웃고 공도 잘차고 달리기도 잘하지. 희자랑도 친하구.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예전에는 부모가 누구인지에 따라 귀한지 천한지를 갈랐다고 아저씨는 말했다. 그러다 일본인들이 조선에 들어온 뒤 조선인들은 양반이고 상민이고 간에 그저 천한 취급을 당하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기런걸 좋아한단다. 아저씨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재비랑 있으면 우리 어마이랑 아바이랑 모두 웃고, 새비 아즈마이두 웃구, 희자도 웃구. 아재비가 오기 전이랑 달라요. 아재비는 해같은 사람이라요. 낭중에두 해를 보믄 아재비가 생각날 것 같아요.
남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면서 그저 노처녀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남들 보기에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서 자신을 속였다. 남선정도라면 남편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기면서 마음속의 경고를 무시했다.
소포를 열어보니 명숙 할머니가 지은 남색 겨울 원피스 한 번ㄹ과 은수저 두벌, 그리고 편지가 들어있었다. 영옥아. 혼인을 축하한다. 은수저와 옷을 보낸다. 잘 살아라. 잘 살아라 .영옥아.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단한순간도 할머니를 채워주지 않았다. 그 목마른 느낌은 할머니가 증조부와의 관계에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증조부에게서 작은 선물 하나도 받은 기억이 없었다. 피난 갈 때도 그는 가장 좋은 자리에서 잠을 잤고 어떤 것도 딸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얇은 외투를 입고 떨어도 자신의 외투를 벗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증조부의 그런 행동이 너무 익숙해서 서운하지조차 않았다. 할머니는 배려하는 남자, 아내와의 관계에서 손익을 따지지 않는 남자를 자신의 배우자로 상상하지 못했다.
명숙 할머니가 보내오는 편지에도 할머니는 답을 하지 않았다. 편지에서 묻어 나오는 명숙 할머니의 애정이 할머니는 버거웠다.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느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어한느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으니까. 남선의 모진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이었다. 하지만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그즈음 남선은 자주 친구들을 끌고 집에 들어와서 다같이 담배를 피우며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정당과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격렬한 토론을 벌이곤 했디. 그는 세상 사람들이 덜 고통받고 더 잘사는 세상을 꿈꾼다는 말을 하면서도 할머니의 발이 얼마나 부어 있는지. 가끔씩 배가 뭉칠 때마다 할머니가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말하면서 할머니가 벌어온 돈은 아무렇지 않게 앗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앞으로 소포가 도착했다. 고운 면으로 정성껏 바느질해서 만든 배냇저고리와 속싸개, 아기 양말과 모자, 손수건이었다. 영옥아 임신 축하한다이. 몇 가지 만들어 보낸다. 항상 건강해라. 영옥아.
영옥이 받아라. 희령에서 잘 지내느냐. 내는 일없다. 이상하게두 재봉틀 돌리고 있으면 너가 내 곁에 붙어서 종알종알 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 싶어, 시끄러운 간나. 기게 영옥이었더랬지. 목소리가 까랑까랑해서 백 리 밖까지 들릴 것 같았다. 그 목소리로 이 책을 몇번이고 읽어줬더랬지. 몇번을 들어도 재미가 있었어. 용옥아. 내레 너를 처음 봤을 적부터 더러운 정이 들 줄 알고 있었따. 저리 가라면서 너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는 데도 너는 강아지마냥 내게 오더구나. 세상이 뒤집히구. 나도 죽을 날이나 기다리며 살고 싶었는데. 네가 나를 비웃어도 할말이 없어.
내 너를 전쟁통에 만났다. 이제 너를 언제 볼 수 있을까. 내 살아있을 때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영옥아. 영옥아. 이렇게 불러본다. 항상 건강해라. 건강해라. 영옥아.
우리 영옥이. 내 살 같은 영옥이를 쥐잡듯 이잡고 화풀이하고 이렇게 다친 아이를 말로 두드려 팰꺼면, 이꼴을 내눈으로 보게 할 거면 내를 기냥 사천에 내버려두지 기랬어요. 내를 당신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내버려 두지 기랬어요.
새비 아주머니는 땀을 흘려가며 할머니가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준비하느라 고생이많았다고 몇 번이나 할머니를 칭찬했다. 새비 아주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의 노력을 알아보고 애쓴 마음을 도닥여주는 사람. 겨울에 빨래를 하고 있으면 손이 시리지는 않은 지 물어보고, 장을 봐오면 다녀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물어보는 사람. 예전 처럼 자기 마음을 살피는 새비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니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는 그것이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갯강구는 바닷가 돌 틈이나 방파제에 살면서 해변을 청소해.
너 예전엔 안 이랬잖아. 어른들한테 예의바르게 행동할 줄 알았지. 무슨 예의? 아 엿같은 소리 들어도 입다물고 앉아있는거? 그게 예의라는 건가? 예의가 없는 건 아빠 가족들이었어. 정신 차려. 엄마. 형수로 부르는 게 뭐가 문제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 삼촌이 지금껏 엄라를 어떻게 대했는데. 엄만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어?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 마라. 말대답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 얘길 들어서 난 내가 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감정이 있어.
나는 조용히 흐느꼈다. 그랬니. 그랬구나. 나도 마음이 아프다. 아주 단순한 말로라도 엄마가 내게 공감해주기를 나는 기대했을까.
엄마 나 지연이야! 어린 내몸안에는 외로움이 전기처럼 흐르고 있어서 누구라도 나를 건드린다면 덩달아 외로워질 것이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더는 안아주지 않고 만져주지 않고 내 손길을 그저 피하는 것은. 그런 상상을 하면 슬픈 마음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안정을 추구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성장하지 못했다. 독에 갇힌 나무처럼 가지를 마음껏 뻗어 나갈 수 가 없었다. 고립 되었다. 네가 말하는 걸 보면 참 징그러워. 너 같은 걸 누가 좋아하겠어라고 내게 말하는 그의 어머니 앞에서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봤다. 당신은 어째서 내 고통을 보지 않지? 눈물을 흘리는 나를 두고 그는 방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음악을 틀고 건강 체조를 했다. 그는 나를 향한 감정의 회로가 차단된 사람처럼 보였다. 내 가 감정을 하나하나 풀어 그에게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통하지 않았다. 거기서 끝내야 하지 않았나.
이혼 후 내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남편의 기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의 결과이기도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니, 그 중 나를 더 아프게 한 건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이었다.
어떤 교사들은 부모가 제대로 보호해줄 수 없는 집의 아이들을 골라 괴롭히곤 했다.
어두워지는 해변에서 미선아 미선아 부르며 걸어오던 증조모의 모습을 엄마는 기억했다. 그때 자신이 느꼈던 반가움을. 자신을 짓누르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을. 무엇보다도 내게 누군가가 있다라는 마음의 속삭임을 엄마는 기억했다
희자. 내 이름은 기쁜 아이라는 뜻이에요. 내가 기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것이기도 하지만. 나라는 아이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기쁨이라는 뜻도 담겨있다는 것을 나는 들어 알고 있었어요. 나는 그 마음을 소중히 품고서 인생을 헤쳐왔어요. 희자. 희자. 잠을 자려고 누워서 천장을 보며 내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곤 했습니다.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살이 나이기도 하고, 열입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나는 나를 너무 쉽게 버렸지만 내게서 버려진 나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 애는 다른 누군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어린 언니와 나를 만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학교에 갈 채비를 하던 열살의 나에게도, 철봉에 매달려 움을을 참던 중학생의 나에게도. 내 몸을 해치고 싶은 충동과 싸우던 스무 살의 나에게도. 나를 함부로 대하는 배우자를 용인했던 나와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어 스스로를 공격하기 바빴던 나에게도 다가가서 귀를 기울인다. 나야. 듣고 있어. 오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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